3. 빛나는 지성의 도시, 비엔나 - 제국의 황혼을 거닐다
비엔나의 상징은 링슈트라세로, 도시 중심을 원형 모양으로 근대적으로 꾸민 것이다.
1857년, 더 이상 외침의 걱정이 없었던 비엔나는 과거 군사 요새를 더 이상 놔둘 필요가 없었고, 그것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도시의 근대화를 상징할만한 링슈트라세가 조성되었다. 이것은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변화해가는 과정 속에서 나타난 산물로, 오스트리아 자유주의를 상징하는 건물이 국회, 비엔나 대학, 시청사, 부르크 극장이다.

오스트리아 입헌 자유주의의 상징, 제국 의회의사당. 덴마크 건축가 테오필 한젠에 의해 1873~1883년에 건축되어, 오늘날까지도 국회의사당으로 쓰고 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 더 이상 군주의 절대주의가 아니라 계몽주의에 근거한 오스트리아 자유주의를 상징한다. 1866년,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독일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되었다. 패전의 결과 황권이 취약해지자 황제는 타협을 시도하였고, 헝가리가 자치권을 얻어내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을 건설하고, 자유주의자들에게도 대폭 양보하여 입헌 정치를 실현하였다.
근처에 있었던 카를 레너 박사의 두상. 경륜있는 사회민주당 지도자로, 오스트리아 제국이 멸망하고 수립된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의 초대 총리이자, 오스트리아가 나치에 의해 해방된 후 설립된 제2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을 지내기도 했다.
빈 시청사. 슈미트에 의해 1872~83년 건축되었다. 내가 갔을 때에는 한창 공사중이였다.
슈타츠오퍼와 함께 명성을 자랑하는 부르크 극장. 드레스덴 극장을 건축한 젬퍼에 의해 1874~88년 건축되었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주로 이곳에서 오페라를 감상하였으며, 오페라 배우 카테리나 슈라트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그녀는 황제 곁에 늘 부재하는 시씨를 대신하여 마음의 벗이 되주었다.
비엔나 대학. 1365년 루돌프 4세의 의해 설립되어, 독일어권 대학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이 건물로는 1873년에 옮겨왔다. 오스트리아 자유주의의 상징적 건물의 완결체다. 대학은 앞장서서 자유화를 외쳤으며, 1848년 3월 혁명에서 메테르니히의 반동 정권을 타도하는데 큰 공헌을 한 것 또한 대학생이었다.
내부로 들어가면 비엔나 대학의 역대 총장들의 두상이 걸려있다. 비엔나 대학은 오스트리아 인재의 산실로, 이곳이 배출한 지성은 무수하게 많다. 프로이트, 멩거, 슘페터, 아도르노, 브렌타노, 볼츠만, 켈첸, 아들러, 브루크너, 비트겐슈타인, 칼 포퍼 등등.

굳이 비엔나 대학을 찾아온 이유는, 내 자신이 대학생으로써 세계의 지성을 낳은 대학들을 살펴보는 것도 이번 여행의 목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파리에서는 파리 4대학-소르본느를 찾았고(여긴 재학생이 아니면 못 들어간다. 유학중이던 선배를 통해 들어갈 수 있었음), 베네치아에서는 수상에 있는 베네치아 대학을 찾았다. 유럽의 대학은 캠퍼스가 아니라 건물만 하나 딸랑 놓여있어 캠퍼스에 익숙한 한국 학생들에겐 어색할 수도 있다.
비엔나 대학과 미술의 혁명가 구스타프 클림트 또한 인연이 있다. 클림트가 이 대학을 나왔다거나 강의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비엔나 대학에서 주문한 벽화를 그려 오스트리아 사회에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클림트가 그린 <의학>의 일부. 클림트는 비엔나 대학의 의뢰를 받아 <철학> <의학> <법학>의 알레고리화를 그렸는데, 이 그림들은 대학과 언론을 비롯하여 당시 오스트리아 지식 사회의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기존의 미술에 익숙해있던 이들은 이 그림들을 "음란하고 혐오스러운" 그림이라 공격했고, 이 그림의 가치를 인정한 교육부 장관의 승인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끝내 전시를 거부했다. 시대를 앞서 나간 선각자를 당시 상류 사회는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이 일로 자존심을 상한 클림트는 다시는 주문 받은 그림은 그리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 다음에 찾은 곳은 카페 <란트만>. 비엔나 대학 바로 옆에 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무수히 많은 유명인사들이 단골로 찾은 곳이다.
비엔나는 유독 카페 문화가 발달했다. 원래 비엔나를 공격한 오스만 군대를 통해 커피가 가장 먼저 유럽으로 전해진 곳이기도 하거니와, 19세기 이후 비엔나의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내노라하는 지성들이 와서 논쟁을 벌이는 문화계의 최첨단이었다. 오늘날에도 비엔나 시민들은 카페를 즐겨 찾는다.
기왕이면 프로이트가 늘 앉았다는 자리에 앉고 싶었는데,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카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아쉬운대로 빈 자리에 앉았다. 비엔나에 온 이상 케이크와 커피는 꼭 먹어야지! 커피는 비엔나에서 맛볼 수 있는 아인슈페너. 이건 여담이지만 프로이트는 블랙 커피를 즐겨 먹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머리를 쓰려면... 실제 그 시대 사람들은 거의 블랙으로 즐겨마셨다고.
이 사람들은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잡담 외에도 정치적, 문화적 토론을 나누는 것일지도 모른다. 100년전에는 이곳에서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들이 정신분석학에 대해 토론하고, 좀 더 많은 유명인사가 다녔던 카페 첸트랄에서는 클림트와 에곤 쉴레가 미술의 미래에 대해 논했을 것이며, 트로츠키와 빅토르 아들러가 체스를 두면서 사회주의의 전망에 대해 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적 현장들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살아 숨쉰다.
케이크를 먹자 자허 토르테 생각이 났다. 비엔나의 케이크라면, 자허 토르테를 지나쳐 간다면 섭한 일이 아니겠는가? 황제가 먹었다는 그 자허 토르테를 사러 자허로 자리를 옮겼다.
<자허>의 내부 모습. 황제에게 납품했다는 전통의 명가답게, 슬쩍 보기만 해도 대중적인 란트만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벽면에 걸려있는 황제의 초상화를 비롯해서, 전체적으로 귀족적인 분위기.
자허 토르테의 원조 답게, 자허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케이크를 판매한다. 원한다면 한국까지 국제 배송도 시킬 수 있다(물론 배송료를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듯하다). 이곳은 특히 일본인들이 즐겨 찾는다고 하는데, 내가 갔을때도 일본인이 많이 있었다.
내가 당장 먹을 한 조각을 사고, 부모님도 드실 수 있게 중간 크기의 케이크를 샀다. 한 조각 베어물때, 입가에서는 천상의 하모니가... 역시 명불허전! 오오 자허 토르테 오오... (이 글을 쓰다보니 새삼 먹고 싶어진다. 한국에서도 팔면 얼마나 좋을까)
덤으로 이곳은 친구가 가본 카페 <게르슈트너>. 1847년이란 단어와 K.U.K란 단어가 인상적이다. K.U.K 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축약어로 Kaiserlich und königlich(카이저라이히 운트 쾨니히 라이히)를 의미한다. 오스트리아 제국과 헝가리 왕국을 의미하는 말로, 세계사에서 드물었던 이중 왕국을 상징함과 동시에 과거 오스트리아의 번영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곳에서도 다양한 케이크를 판매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네 그려.

비엔나의 카페를 떠나, 석양이 진 거리를 걸으며, 제국의 황혼을 반추한다. 무수히 많은 지성이 명멸한 시기, 서서히 찾아오는 종말을 왈츠를 추며 기다리는 "즐거운 종말". 수많은 모순이 공존하였기에 오히려 더 후대의 관심을 끄는 그곳, 비엔나. 내가 여행을 통해 가장 즐거운 것은 바로 책에서만 보았던 그 역사의 현장에 내가 직접 가게 된다는 점이다. 지금은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길 위에서도, 역사는 창조되었고 그 길은 역사를 기억할 것이다.
회고적인 추억에 빠진 나에게 있어 비엔나는 여전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비엔나이며 수많은 창조자들의 도시 비엔나이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며, 프라하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 기회가 된다면, 다음 번에는 이 여행에서 가보지 못한 곳 -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와 보스니아 등을 여행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투어>를 한번 해볼까 한다. 어떤 곳에서는 문화의 창조자였고, 어떤 곳에서는 민족의 압제자였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모순으로 가득 찬 허상의 제국. 한때 하나의 나라였지만 지금은 10여개가 넘는 나라로 계승된 나라. 100여년전 수많은 다양성이 공존하며 살아 숨쉬던 "즐거운 몰락" 의 현장에 다시 한번 가고픈게 나의 소망이다.
비엔나 여행전에 읽어보면 좋을 책 :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 : 합스부르크 제국의 정신사와 문화사의 재발견- 윌리엄 존스턴, 글항아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성사를 다룬 놀라운 책. 본인이 이 책 읽고 이중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야말로 이중 제국의 지성사를 총망라하고 있다.
비엔나 : 천재들의 붉은 노을 - 칼 쇼르스케, 생각의 나무. - 세기말 비엔나의 문화사를 다룬 책.
황태자의 마지막 키스 - 프레더릭 모턴, 주영사. - 황태자 루돌프는 어째서 자살하였나? 소설 형식으로 다룬 역사 이야기.
석양녘의 왈츠 : 제국의 붕괴와 1차 세계대전의 발발 - 프레더릭 모턴, 주영사. - 앞의 책의 후속작. 제국은 어떻게 무너지게 되었으며 왜 1차 세계대전은 일어났는가?
빈, 비트겐슈타인, 그 세기말의 풍경 - 앨런 재닉· 스티브 툴민, 이제이북스. - 세기말 비엔나의 지성사를 다룬 또 다른 책.
제국의 종말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1848-1918 - 타임라이프 북스, 가람기획.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비엔나 워킹 투어 : 중세의 골목길에서 만나는 영광의 역사와 예술 그리고 낭만 - 정준극, 한울. - 비엔나의 역사와 함께 하는 여행 가이드북.
빈이 사랑한 천재들 : 클림트에서 프로이트까지 - 조성관, 열대림. - 비엔나가 낳은 여섯명의 천재를 다룬 책.
클림트, 황금빛 유혹 - 신성림, 다빈치. - 비엔나가 배출한 천재 화가, 클림트의 생애를 담은 책.
비엔나 칸타빌레 - 곽정란· 유강호, 삼성출판사. - 음악으로 살펴보는 비엔나 여행.
비엔나의 상징은 링슈트라세로, 도시 중심을 원형 모양으로 근대적으로 꾸민 것이다.
1857년, 더 이상 외침의 걱정이 없었던 비엔나는 과거 군사 요새를 더 이상 놔둘 필요가 없었고, 그것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도시의 근대화를 상징할만한 링슈트라세가 조성되었다. 이것은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변화해가는 과정 속에서 나타난 산물로, 오스트리아 자유주의를 상징하는 건물이 국회, 비엔나 대학, 시청사, 부르크 극장이다.

오스트리아 입헌 자유주의의 상징, 제국 의회의사당. 덴마크 건축가 테오필 한젠에 의해 1873~1883년에 건축되어, 오늘날까지도 국회의사당으로 쓰고 있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주로 이곳에서 오페라를 감상하였으며, 오페라 배우 카테리나 슈라트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그녀는 황제 곁에 늘 부재하는 시씨를 대신하여 마음의 벗이 되주었다.



굳이 비엔나 대학을 찾아온 이유는, 내 자신이 대학생으로써 세계의 지성을 낳은 대학들을 살펴보는 것도 이번 여행의 목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파리에서는 파리 4대학-소르본느를 찾았고(여긴 재학생이 아니면 못 들어간다. 유학중이던 선배를 통해 들어갈 수 있었음), 베네치아에서는 수상에 있는 베네치아 대학을 찾았다. 유럽의 대학은 캠퍼스가 아니라 건물만 하나 딸랑 놓여있어 캠퍼스에 익숙한 한국 학생들에겐 어색할 수도 있다.
비엔나 대학과 미술의 혁명가 구스타프 클림트 또한 인연이 있다. 클림트가 이 대학을 나왔다거나 강의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비엔나 대학에서 주문한 벽화를 그려 오스트리아 사회에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그 다음에 찾은 곳은 카페 <란트만>. 비엔나 대학 바로 옆에 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무수히 많은 유명인사들이 단골로 찾은 곳이다.



케이크를 먹자 자허 토르테 생각이 났다. 비엔나의 케이크라면, 자허 토르테를 지나쳐 간다면 섭한 일이 아니겠는가? 황제가 먹었다는 그 자허 토르테를 사러 자허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당장 먹을 한 조각을 사고, 부모님도 드실 수 있게 중간 크기의 케이크를 샀다. 한 조각 베어물때, 입가에서는 천상의 하모니가... 역시 명불허전! 오오 자허 토르테 오오... (이 글을 쓰다보니 새삼 먹고 싶어진다. 한국에서도 팔면 얼마나 좋을까)



비엔나의 카페를 떠나, 석양이 진 거리를 걸으며, 제국의 황혼을 반추한다. 무수히 많은 지성이 명멸한 시기, 서서히 찾아오는 종말을 왈츠를 추며 기다리는 "즐거운 종말". 수많은 모순이 공존하였기에 오히려 더 후대의 관심을 끄는 그곳, 비엔나. 내가 여행을 통해 가장 즐거운 것은 바로 책에서만 보았던 그 역사의 현장에 내가 직접 가게 된다는 점이다. 지금은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길 위에서도, 역사는 창조되었고 그 길은 역사를 기억할 것이다.
회고적인 추억에 빠진 나에게 있어 비엔나는 여전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비엔나이며 수많은 창조자들의 도시 비엔나이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며, 프라하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 기회가 된다면, 다음 번에는 이 여행에서 가보지 못한 곳 -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와 보스니아 등을 여행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투어>를 한번 해볼까 한다. 어떤 곳에서는 문화의 창조자였고, 어떤 곳에서는 민족의 압제자였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모순으로 가득 찬 허상의 제국. 한때 하나의 나라였지만 지금은 10여개가 넘는 나라로 계승된 나라. 100여년전 수많은 다양성이 공존하며 살아 숨쉬던 "즐거운 몰락" 의 현장에 다시 한번 가고픈게 나의 소망이다.
비엔나 여행전에 읽어보면 좋을 책 :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 : 합스부르크 제국의 정신사와 문화사의 재발견- 윌리엄 존스턴, 글항아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성사를 다룬 놀라운 책. 본인이 이 책 읽고 이중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야말로 이중 제국의 지성사를 총망라하고 있다.
비엔나 : 천재들의 붉은 노을 - 칼 쇼르스케, 생각의 나무. - 세기말 비엔나의 문화사를 다룬 책.
황태자의 마지막 키스 - 프레더릭 모턴, 주영사. - 황태자 루돌프는 어째서 자살하였나? 소설 형식으로 다룬 역사 이야기.
석양녘의 왈츠 : 제국의 붕괴와 1차 세계대전의 발발 - 프레더릭 모턴, 주영사. - 앞의 책의 후속작. 제국은 어떻게 무너지게 되었으며 왜 1차 세계대전은 일어났는가?
빈, 비트겐슈타인, 그 세기말의 풍경 - 앨런 재닉· 스티브 툴민, 이제이북스. - 세기말 비엔나의 지성사를 다룬 또 다른 책.
제국의 종말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1848-1918 - 타임라이프 북스, 가람기획.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비엔나 워킹 투어 : 중세의 골목길에서 만나는 영광의 역사와 예술 그리고 낭만 - 정준극, 한울. - 비엔나의 역사와 함께 하는 여행 가이드북.
빈이 사랑한 천재들 : 클림트에서 프로이트까지 - 조성관, 열대림. - 비엔나가 낳은 여섯명의 천재를 다룬 책.
클림트, 황금빛 유혹 - 신성림, 다빈치. - 비엔나가 배출한 천재 화가, 클림트의 생애를 담은 책.
비엔나 칸타빌레 - 곽정란· 유강호, 삼성출판사. - 음악으로 살펴보는 비엔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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